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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앞선 무기가 이긴 게 아니다
Business Insight

가장 앞선 무기가 이긴 게 아니다

1969년 닉슨이 발을 빼던 자리에서 시작된 한국 방산이 세계 9위가 되기까지. 시장을 연 것은 가장 앞선 무기가 아니라, 위기를 자강으로 바꾼 축적과 늦지 않는 신뢰였다.

송찬영

CTO

한국이 어떻게 무기 수출국이 됐는지를 다룬 기사를 읽다가, 그 시작이 1969년이라는 대목에서 멈췄다.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입니다. 특히 자유를 위협받는 당사자의 책임입니다." 트럼프가 어제 한 말 같지만, 리처드 닉슨이 반세기 전에 한 연설이다. 미국이 세계의 방위를 더는 혼자 책임질 수 없다는 선언. 닉슨 독트린이라 불린 이 말이, 한국을 무기 상인으로 만든 출발점이 됐다.

버려질까 두려웠던 나라

방산 중장비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자 아시아가 술렁였지만, 한국이 받은 충격은 특히 컸다. 주한미군 약 2만 명이 빠져나갔다. 한국전쟁의 기억이 채 20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미국이 발을 빼면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나.

박정희 정부의 답은 짓는 것이었다. 자주국방을 내걸고 막대한 돈을 방위산업에 부었다. 처음에는 외국 무기를 면허 생산하고, 더러는 역설계해 자기 것으로 바꿨다. 위기가 곧 시작이었다.

위기를 비용으로 흘려보내느냐, 역량으로 쌓느냐. 그 갈림길에서 한국은 후자를 택했다.

반세기 뒤,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게 쌓은 것이 반세기 뒤에 꽃폈다. 한국은 세계 9위 무기 수출국이 됐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축에 든다. 한화, 현대로템, LIG넥스1, KAI 네 회사의 합산 매출은 2026년 약 370억 달러로, 2021년의 약 네 배가 될 전망이다. 유럽 NATO 회원국에는 미국 다음, 두 번째로 큰 공급국이 됐다.

흥미로운 건 지금의 부상을 만든 배경이 출발점과 닮았다는 점이다. 닉슨이 연 길을 트럼프가 다시 연다. 미국이 안보 공약에서 발을 빼자 동맹들은 불안해한다. 미국은 10년 전만큼 믿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와 이란, 두 전쟁이 급한 수요를 만들었다. 세계의 불안정은 나쁜 일이지만, 한국에는 사업이 됐다.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폴란드라는 상징

자주포가 철도와 트레일러로 운송되는 납품 물류 장면

그 변화를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게 폴란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폴란드는 자국의 낡은 소련제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먼저 보냈다. 빈자리는 독일이 레오파르트로 채워주길 기대했지만, 독일의 대응은 더뎠다. 신뢰의 공백이 생겼고, 그 자리를 한국이 빠르게 메웠다.

폴란드는 한국의 가장 큰 고객이 됐다. K2 전차, 다연장, 자주포를 포함한 137억 달러 규모의 계약. 무엇이 폴란드를 움직였나. 첨단 성능이 아니라 늦지 않는 납기였다. 급한 쪽에게 제때 도착하는 무기는,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사양이다.

한국이 선택받는 이유

기사를 따라가 보면 한국이 이긴 무기는 가장 앞선 것이 아니었다. 다섯 가지가 겹쳤다.

속도. 빨리빨리라는 문화에 더해, 북한이라는 상존하는 위협 때문에 생산 라인이 늘 돌아간다. 평화협정 없이 기술적으로는 아직 전쟁 중인 나라가, 그 준비 태세를 그대로 수출 경쟁력으로 바꿨다.

가격. 내수와 수출을 함께 대량으로 만드니 단가가 내려간다. 빠르게, 큰 규모로 군을 현대화해야 하는 형편이 빠듯한 나라들에게 매력적이다.

기술 이전.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까지 내준다. 서구의 전통적 수출국이 잘 하지 않는 조건이다. 한국 스스로가 1970년대에 그 방식으로 컸기에, 그 가치를 안다.

맞춤화. 이집트는 지상 표적을 때리던 K9 자주포를 바다의 군함을 칠 수 있게 바꿔달라고 했다. 전례 없는 요청이었지만 한화는 응했고, 시험에서 성공했다. 이집트는 17억 달러어치를 샀다.

정치적 부담 없음. 왜 한국에서 무기를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이 저마다 짊어진 정치적 꼬리표가 한국에는 없다.

그래도 쉽지는 않다

대형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선박과 갠트리 크레인

물론 장밋빛만은 아니다. 전차와 방공은 호평받지만, 큰돈이 걸린 항공기와 대형 함정은 아직 세계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한화오션이 노리는 캐나다의 600억 달러 잠수함 사업에서는, 오랜 경력의 독일 ThyssenKrupp에 밀린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구조적인 벽도 있다.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을 내걸고 역내 산업을 키우려 한다. 일본은 오랜 무기 수출 빗장을 풀었다. 경쟁은 이제부터다.

결국 무엇이 남는가

한국은 2030년 세계 4위를 목표로 내건다. 한 전문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느냐보다, 목표를 내거는 행위 자체가 메시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투자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로 남겠다는 신호. 잠재 고객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무기에 관한 것만은 아니라고 읽었다. 화려한 한 방이 시장을 여는 경우는 드물다. 위기를 자강의 계기로 바꿔 오래 쌓은 역량, 그리고 급할 때 늦지 않는 신뢰. 그 둘이 결국 문을 연다. 기술을 만드는 회사도 다르지 않다.

질문 하나가 남는다. 우리는 위기를 비용으로 흘려보내고 있는가, 역량으로 쌓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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