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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개발자가 ‘엠대시(—)’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 - AI 시대, 엠대시(—)를 쓰는 것이 왜 AI처럼 보일까 걱정하시나요? 개발자 김테크가 말하는 '문체의 자유
Culture & Philosophy

AI 시대, 개발자가 ‘엠대시(—)’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

AI 시대, 엠대시(—)를 쓰는 것이 왜 AI처럼 보일까 걱정하시나요? 개발자 김테크가 말하는 '문체의 자유'와 주체적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김테크

8년차 개발자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8년차 개발자 김테크입니다.

요즘 기술 블로그나 PR(Pull Request) 리뷰 코멘트를 보면서 묘한 위화감을 느낀 적 없으신가요? 문장이 어딘가 매끄럽지만 동시에 기계적인 느낌이 들 때 말이죠. 특히 개발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이거 챗GPT가 쓴 거 아니야?"라고 의심하게 만드는 몇 가지 '징후'들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오늘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바로 긴 줄표, ‘엠대시(em-dash, —)’입니다.

오늘은 코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개발자의 글쓰기와 도구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한동안 이 친구를 피해 다녔거든요.

“혹시 이거 AI가 썼어요?”라는 말의 공포

얼마 전, 팀 내부 위키에 기술 부채 해결을 위한 제안서를 작성했습니다. 평소처럼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문장 중간에 부연 설명을 넣고 싶더군요. 습관적으로 영문 키보드에서 Option + Shift + -를 눌러 엠대시를 입력했습니다. 문장의 호흡을 끊지 않으면서 우아하게 설명을 덧붙이는, 제가 참 좋아하는 구두점이죠.

그런데 문서를 다 쓰고 나서 검토를 하는데 멈칫했습니다.

"이 아키텍처는 레거시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유지하면서—동시에 미래의 확장성을 고려하여—설계되었습니다."

이 문장을 보니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더라고요. 요즘 LLM(Large Language Model)들이 생성하는 텍스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엠대시의 남발이거든요. 사람이 쓴 글이라면 괄호를 쓰거나 쉼표로 끝낼 법한 곳에, AI는 기가 막히게 엠대시를 집어넣습니다.

순간 고민했습니다. "이거 지우고 그냥 쉼표로 바꿀까? 괜히 팀원들이 AI로 대충 쓴 글이라고 오해하면 어떡하지?"

개발자로서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 사고의 흐름, 문제 해결 과정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과정이죠. 그런데 그 진정성이 '구두점 하나' 때문에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자존심 상하더군요.

엠대시는 죄가 없다

원문을 읽어보니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개발자가 꽤 많은가 봅니다. 원래 엠대시는 영어권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문장 부호입니다. 괄호보다는 덜 격리된 느낌을 주고, 쉼표보다는 더 강조하는 효과가 있죠. 문장에 리듬감을 주고, 때로는 극적인 반전을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실리콘 칩이 발명되기 수백 년 전부터 작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도구예요.

그런데 LLM이 이 세련된 문법을 학습해서 흉내 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우리가 AI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AI가 인간의 가장 세련된 글쓰기를 모방한 것뿐인데 말이죠.

우리는 왜 도구 때문에 우리의 표현력을 제한해야 할까요? 저는 여기서 오기가 생겼습니다. 마치 리팩토링하다가 생긴 버그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할 때의 그 기분처럼요.

알고리즘에 뺏긴 '문체의 자유'를 되찾기

우리는 개발자입니다. 도구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도구를 통제하는 사람들이죠. AI가 엠대시를 쓴다고 해서 우리가 그걸 피하는 건, 일종의 패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문체가 '인공적'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서 평범하고 납작한 문장을 쓰는 것—그건 진짜 내 글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도 결심했습니다. 억지로 하이픈(-)이나 쉼표(,)로 도망가지 않기로요. 코드 주석이든, 기술 블로그든, 슬랙 메시지든, 문맥상 엠대시가 가장 적절한 도구라면 과감하게 사용할 겁니다.

심지어 원문의 작성자는 블로그의 모든 하이픈을 강제로 엠대시로 바꿔버리는 플러그인까지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느낌으로 코딩했다"는 고백이 참 인간적이라 웃음이 났습니다.) 저도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제 IDE의 스니펫 설정에 엠대시 단축키를 다시 활성화했습니다.

마치며: 기계적인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

개발자로서 우리는 매일 깃허브 코파일럿이나 클로드 같은 AI 도구의 도움을 받습니다. 생산성은 엄청나게 올라갔죠. 하지만 그 결과물에 '나의 색깔'이 묻어있는지는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AI가 짠 코드, AI가 쓴 문서는 완벽할지 몰라도 '맥락'과 '의도'가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엠대시를 다시 쓴다는 건, 단순히 문장 부호 하나를 되살리는 게 아닙니다. "이 글과 코드는 내가 고민해서 쓴 것이다"라는 주체성을 선언하는 것이죠.

풀링포레스트 팀원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이제 제 문서에서 엠대시가 보여도 "AI 돌렸네"라고 의심하지 말아 주세요. 그건 제가 여러분에게 더 정확하고 우아하게 맥락을 전달하고 싶어서 고심 끝에 찍은, 인간 지성의 흔적이니까요.

오늘 여러분의 커밋 메시지에는 어떤 인간적인 고민이 담겨 있나요?

감사합니다. 김테크였습니다.

지금 읽으신 내용, 귀사에 적용해보고 싶으신가요?

상황과 목표를 알려주시면 가능한 옵션과 현실적인 도입 경로를 제안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