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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의 역설: 2025년, eSIM으로의 완전 전환을 뼈저리게 후회한 이유 - eSIM으로의 완전 전환 과정에서 겪은 '디지털 데드락' 경험을 통해, PM의 관점에서 기술 혁신과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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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의 역설: 2025년, eSIM으로의 완전 전환을 뼈저리게 후회한 이유

eSIM으로의 완전 전환 과정에서 겪은 '디지털 데드락' 경험을 통해, PM의 관점에서 기술 혁신과 사용자 경험(UX) 설계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담았습니다.

김형철

CEO / PM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EO이자 PM 김형철입니다.

우리는 늘 '최신 기술'이 곧 '더 나은 경험'을 의미한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2025년, 구글의 최신 픽셀 시리즈를 도입하면서 물리 SIM 슬롯이 완전히 사라진 기기를 받아들였을 때만 해도, 저는 이것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eSIM으로의 완전 전환 과정에서 겪은 ‘디지털 데드락(Deadlock)’ 경험과, 이를 통해 PM으로서 다시금 깨닫게 된 사용자 경험(UX) 설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물리적 제약의 제거가 가져온 뜻밖의 재앙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물리 SIM 슬롯을 없애는 논리는 명확합니다. 기기 내부의 '부동산'은 매우 비싸기 때문이죠. 나노심(NanoSIM)조차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면 배터리 용량을 늘리거나(약 8% 정도의 이득이라고 합니다) 다른 센서를 넣을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트레이드오프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와 사용자 경험의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제가 겪은 문제는 기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과거에는 그저 유심 핀으로 트레이를 찔러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옮기기만 하면 끝날 일이었습니다. 30초도 걸리지 않는, 직관적이고 '바보 같을 정도로 확실한(Foolproof)' 과정이었죠.

이번엔 달랐습니다. eSIM 프로파일을 새 기기로 전송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전송은 실패했고, 기존 기기의 eSIM은 비활성화되었습니다. 제 전화번호는 디지털 공간의 미아(Limbo)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인증의 딜레마: 열쇠가 방 안에 있는데 문이 잠기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통신사에 연락해 eSIM을 재발급받으려 했지만, 통신사의 보안 정책은 'SMS 인증'을 요구했습니다. 본인 확인을 위해 제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죠.

하지만 제 SIM은 먹통입니다. 문자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끊겼는데, 그 수단을 복구하려면 문자를 받아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 개발 용어로 말하자면 완벽한 교착 상태(Deadlock)이자, 단일 실패 지점(SPOF, Single Point of Failure)이 발생한 것입니다.

결국 저는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잃고, 오프라인 대리점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30초면 끝날 하드웨어적 교체가, 1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과 오프라인 방문이라는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로 변질된 순간이었습니다. 매장 구석에 서서 멍하니 순서를 기다리며, 저는 PM으로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프로덕트 관점에서의 인사이트: 기술은 인간을 위해야 한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 풀링포레스트 팀이 프로덕트를 만들 때 경계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 해피 패스(Happy Path) 뒤에 숨겨진 엣지 케이스: 모든 것이 정상 작동할 때 eSIM은 편리합니다. 하지만 장애 상황(Failover)에 대한 설계가 부실했습니다. 우리는 기능 구현에 집중하느라, 사용자가 '실패했을 때' 겪게 될 막막함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 레거시 프로세스와 신기술의 충돌: eSIM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했지만, 인증 방식은 여전히 낡은 SMS 기반 2FA(2단계 인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구글 파이(Google Fi)처럼 계정 기반 인증을 도입했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드웨어만 혁신하고 프로세스가 따라가지 못할 때, 그 고통은 고스란히 사용자의 몫이 됩니다.

  • 통제권의 상실: 물리 SIM은 사용자가 통제할 수 있는 물리적 객체였지만, eSIM은 통신사와 제조사의 서버에 종속됩니다. 사용자의 통제권을 뺏는 방향의 혁신(일명 Enshittification)은 결국 사용자에게 불안감을 줍니다.

결론: 신뢰성 없는 혁신은 불편함일 뿐

헤드폰 잭이 사라지고, 마이크로 SD 슬롯이 사라진 데 이어 이제는 물리 SIM마저 사라지고 있습니다. 배터리 8%를 더 얻기 위해, 우리는 '연결의 안정성'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개발자나 PM으로서 우리는 늘 최신 스택과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효율성이 사용자의 '생존'과 직결된 기능을 위협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설계입니다. 시스템을 설계할 때 "이 기능이 멈추면 사용자는 어떻게 복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던져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기술의 진보를 믿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물리적인 '플라스틱 조각'이 주던 그 투박하지만 확실한 신뢰감이 몹시 그리울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혹시 모를 '디지털 락아웃'에 대비해, 인증 수단을 SMS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점검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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