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 법
고객의 답장, 알고리즘, 시장은 내 손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에픽테토스부터 스티븐 코비까지, 통제 가능한 것에 에너지를 모으는 사람이 어떻게 실력을 쌓는지 이야기합니다.
송찬영
CTO
지난주에 제가 보낸 제안서 한 건이 며칠째 답장이 없었습니다. 보낸 메일함을 몇 번이나 열어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읽었을까, 별로였을까, 내가 뭘 빠뜨렸나. 그러다 문득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제 모습을 봤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제가 손쓸 수 없는 일을 붙잡고 마음만 졸이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일을 거의 못 했습니다. 정확히는, 답장이 오지 않아서 못 한 게 아니라 답장을 기다리느라 못 했습니다. 고객의 결정은 제 통제 밖이었는데, 저는 거기에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입니다.
성과를 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능력이 아니라 걱정하는 대상에 있다는 말을, 그날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바꿀 수 없는 것에 씁니다
하루를 돌아보면 머릿속을 차지하는 질문들이 비슷합니다. 고객이 왜 답장을 안 하지, 알고리즘이 왜 내 콘텐츠를 안 태워주지, 시장이 왜 이렇게 안 좋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지.
하나하나 다 절실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지금 당장 제 손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오래 들여다본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마음만 무거워질 뿐입니다.
어떤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분을 가장 오래전에 또렷하게 말한 사람이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입니다. 그는 어떤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의견, 욕망, 선택, 행동은 내 통제 안에 있습니다. 반면 몸, 재산, 평판, 지위는 완전히 내 통제 안에 있지 않습니다. 답장 없는 메일함 앞에서 흔들리던 저에게 이 말은 이렇게 들렸습니다.
문제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다.
제가 붙잡고 있던 건 고객의 결정, 즉 제 통제 밖의 것이었습니다. 손을 옮겨야 할 곳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것과 통제 가능한 것을 나눠봅니다
그래서 저는 머릿속을 두 칸으로 나눠보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한쪽에는 못 바꾸는 것, 다른 쪽에는 바꿀 수 있는 것을 적습니다.
시장 상황은 못 바꾸지만 오늘 올릴 콘텐츠는 정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최종 선택은 못 바꾸지만 제안서의 완성도는 높일 수 있습니다. 타인의 평가는 못 바꾸지만 고객에게 보낼 메시지는 다듬을 수 있습니다. 인스타 알고리즘은 못 바꾸지만 내가 개선할 한 가지는 고를 수 있고, 이미 벌어진 일은 못 바꾸지만 다시 실험하는 속도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성과는 보통 두 번째 목록에서 만들어집니다.
신기한 건, 이렇게 두 칸으로 적기만 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점입니다. 막연하던 불안이 실제로 손댈 수 있는 일과 손댈 수 없는 일로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구별하는 것이 바꾸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에도 같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저는 이 기도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마지막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구별하는 지혜입니다. 평온함도 용기도 그다음 문제입니다. 무엇이 바꿀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부터 가려야,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고 바꿀 것에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중요한 건 바꾸는 것보다 먼저 구별하는 것입니다.
‘왜 안 됐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구별을 실무에서 쓰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좋은 사람은 ‘왜 안 됐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뭐지, 내가 더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건 뭐지, 다음 실험에서 줄일 수 있는 변수는 뭐지, 오늘 당장 수정할 수 있는 한 문장은 뭐지. 답장 없던 그날 저도 결국 메일함을 닫고 제안서를 다시 펼쳤습니다. 첫 문장이 약했습니다. 통제 가능한 질문이 통제 가능한 행동을 만듭니다.
걱정의 원 대신 영향력의 원으로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걸 두 개의 원으로 설명합니다. 걱정의 원과 영향력의 원입니다. 우리가 마음 쓰는 모든 것이 걱정의 원이라면, 그 안에서 실제로 내가 손쓸 수 있는 더 작은 영역이 영향력의 원입니다.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에 에너지를 모읍니다. 반대로 반응적인 사람은 통제력이 거의 없는 걱정의 영역에 머무릅니다. 답장을 기다리던 그날의 저는 명백히 후자였습니다.
걱정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행동 가능한 영역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흔드는 건 사건이 아니라 판단입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한 발 더 들어갑니다. 우리를 흔드는 건 외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답장이 없다는 사실은 그냥 사실입니다. 거기에 ‘내가 부족했나 보다’라는 판단을 얹은 건 저였습니다. 상황은 못 바꿔도,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통제 가능한 영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어집니다.
불안할 때는 이렇게 나눠보세요
그래서 저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 걱정을 세 칸으로 나눕니다. 첫째,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일단 인정합니다. 둘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관계와 설득과 개선으로 접근합니다. 셋째,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실행합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할 일이 보입니다. 걱정이 줄어서 할 일이 보이는 게 아니라, 할 일이 보여서 걱정이 줄어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불안할수록 더 크게 생각하지 말고, 더 작게 쪼개보시길 권합니다.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면 실력이 쌓입니다
저는 풀링포레스트에서 업무 시스템과 ERP, AI를 다룹니다. 이 일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합니다. 시장도, 경쟁사도, 고객의 최종 선택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배운 게 이 구별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감정만 소모됩니다. 하지만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면 실력이 쌓입니다. 오늘 한 줄 더 명확하게 쓴 제안서, 조금 더 빨라진 실험 한 번, 감정에 끌려가지 않은 판단 하나. 이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제 안에 남습니다. 결국 인생도, 일도, 사업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하루씩 쌓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묻고 싶습니다. 오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 하나를 찾아 실행하셨다면, 오늘은 충분히 잘 보낸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