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난기는 사라지고, 생존만이 남은 시대의 엔지니어링
기술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며 유머가 사라진 시대,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이 전하는 기술적 야성과 AI 시대의 엔지니어링 본질에 대한 고찰입니다.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최근 댄 왕(Dan Wang)의 '2025 Letter'를 읽으며, 10년 전과 지금의 공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는 실리콘밸리와 공산당의 공통점이 '유머가 없고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더군요. 2015년 무렵, 우리가 소비자 앱이나 암호화폐 같은 아이디어를 던지며 낭만적으로 밤을 지새우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의 거물들은 '상자 안의 신(God in a Box)'이라 불리는 AI를 만들며 묵시록적인 예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 역시 이 무거운 흐름 속에서 막막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팀의 슬랙 채널에는 농담 따먹기와 가벼운 사이드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등장하고 기술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면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샘 알트먼이 농담처럼 던진 "AI가 세상을 끝장낼 수도 있겠지만, 그 와중에 머신러닝으로 훌륭한 기업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말이 단순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죠. 우리 개발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레거시 코드를 걷어내고 LLM 기반의 새로운 아키텍처를 도입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살얼음판 같았습니다. "이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공포가 우리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진지함'의 이면에는 엄청난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댄 왕이 언급했듯,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실력주의적인 곳입니다. 학벌이나 배경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한 이 문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Y Combinator 창업자들의 중위 연령이 24세로 낮아졌다는 통계는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기술적 역량과 끈기만 있다면 누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팀원들에게 "동부의 금융권처럼 격식을 차리지 말고, 피자 상자가 널브러진 방에서 혁신을 만들던 그 야성을 되찾자"고 강조합니다.
풀링포레스트는 이 변화의 파도 위에서 '속도'를 다시 정의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코드를 빨리 짜는 것이 아니라, Cursor나 Claude 같은 도구를 적극 활용해 가설을 검증하는 주기를 극도로 단축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일주일이 걸리던 MVP 제작을 이제는 하루 만에 끝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니어 개발자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 "AI가 내 코드를 다 짜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토로하는 팀원을 볼 때마다, 저는 기술 리더로서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코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댄 왕이 묘사한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처럼,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누비는 것이 처음에는 기괴해 보여도 곧 일상이 되듯, 지금의 AI 트렌드도 결국 우리가 다루어야 할 도구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쥐고 무엇을 만드느냐는 본질입니다. 우리는 '진지한 머신러닝'을 하되, 그 안에서 인간적인 연결과 커뮤니티의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기술은 차가울지라도, 그것을 만드는 우리의 마음까지 차가워져서는 안 되니까요.
세상이 아무리 진지해지고 유머가 사라진다 해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만드는 것은 사람입니다. 거대한 변화 앞에서 위축되기보다, 이 격동의 시기를 함께 건너갈 동료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집중해 봅시다. 2025년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닌, 증명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