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딩은 AI가 하고 당신은 '취향'을 설계하세요: 470권의 책장 프로젝트가 남긴 것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이 전하는 AI 시대의 개발자 역량. 470권의 책장 디지털화 프로젝트를 통해 본 '바이브 코딩'과 '취향' 그리고 '판단력'의 중요성.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최근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행위를 넘어, 원하는 결과물의 느낌과 맥락을 AI와 조율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을 뜻하죠. 오늘은 이 개념을 아주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어,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기술 리더십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한 개발자가 Claude Code를 활용해 470권의 개인 서재를 디지털화한 프로젝트인데, 이 과정에서 개발자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아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개발자 마리우스는 500권에 가까운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 지루한 작업이었기에 수년 동안 미뤄왔던 일이죠. 그는 2025년이 되어서야 AI 에이전트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첫 번째 통찰이 나옵니다. AI는 프로젝트의 가장 큰 병목이었던 '지루한 실행'을 제거했습니다. 실행 비용이 0에 수렴하게 되자, 남은 것은 오직 '의도'뿐이었습니다.
그는 책등과 표지 사진 470장을 찍어 Claude에게 던져주었습니다. OpenAI Vision API를 통해 저자, 제목, 출판사를 추출하는 스크립트를 작성하게 했죠. 결과는 약 90%의 정확도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훌륭한 기술적 판단을 내립니다. 나머지 10%의 에러(소련 농업 매뉴얼로 인식된 소설책 등)를 잡기 위해 며칠 동안 예외 처리 로직을 짜는 대신, 그냥 손으로 수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코딩 능력이 아니라 '판단력(Judgment)'의 영역입니다. AI 시대의 개발자는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화의 한계효용을 계산하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UI를 구성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개발자라면 깔끔한 표지 그리드(Grid) 뷰를 선택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실제 책장의 느낌, 즉 '바이브'를 원했습니다. 서로 다른 책 두께, 바랜 색감, 책등의 불규칙한 텍스처를 구현하고 싶어 했죠. 그는 Claude에게 표지에서 주요 색상을 추출하고(Color Quantization), 페이지 수에 비례해 책등의 너비를 조절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애니메이션 구현 시 덜컹거리는 느낌이 들자, Claude는 즉시 React의 불필요한 리렌더링 문제를 지적하며 Framer Motion의 최적화된 방식으로 코드를 수정했습니다. 기술적 구현은 AI가 순식간에 해결했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튕기는 느낌이라 별로야, 좀 더 묵직하게 기울어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취향(Taste)'의 영역이었습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그는 460권의 책을 한 번에 로딩하는 대신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을 도입하려 했습니다. AI는 이를 완벽하게 구현했지만, 결과적으로 사용자 경험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작동했지만, 경험적으로는 실패한 기능이었죠. 그는 과감하게 그 코드를 삭제했습니다. 작동하는 코드라도 불필요하다면 버릴 줄 아는 것, 이것은 시니어 개발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AI는 시키는 대로 짤 뿐, 그것이 제품에 필요한지 아닌지는 판단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에서 마리우스가 직접 쓴 코드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바빴습니다. 90%의 정확도에 만족하기로 결정했고, 그리드 대신 책등 뷰를 선택했으며, 불필요한 무한 스크롤을 걷어냈고, 애니메이션의 감도를 조율했습니다. Claude가 '구현'을 담당할 때, 그는 '취향'과 '품질'을 책임졌습니다.
풀링포레스트 팀원들에게도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이제 "코드를 짤 줄 안다"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의 개발자는 감독(Director)이자 편집자(Editor)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적 난제는 AI가 놀라운 속도로 해결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어디에, 얼마나, 어떤 느낌으로 적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실행은 점점 저렴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취향과 올바른 판단력은 여전히 비싸고 귀한 자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코드를 짜고 계십니까, 아니면 제품을 지휘하고 계십니까? 이 질문이 여러분의 성장에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