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닫히는 국경, 분산되는 인재: 기술 리더가 바라본 글로벌 엔지니어링의 위기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이 바라본 실리콘밸리 중심 기술 생태계의 변화와 국경 장벽에 대응하는 비동기 협업 및 기술 허브 다변화 전략을 공유합니다.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최근 해외 컨퍼런스 참석을 준비하던 중, 글로벌 테크 업계의 지인에게서 들은 한마디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송, 미안하지만 이번 미국 행사에는 못 갈 것 같아. 입국 심사가 너무 위험해졌거든." 단순한 개인의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실리콘밸리 중심의 기술 생태계'가 물리적인 국경 장벽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현상이 우리 같은 기술 조직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솔직히 말해, 기술 리더로서 지금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을 종합해 보면, 미국으로 향하는 기술 인재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비자 발급이 늦어지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H-1B 비자 수수료가 비현실적으로 치솟고, 정당한 서류를 갖춘 엔지니어조차 국경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죠.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CES나 주요 기술 학회에 참석하려다 공항에서 되돌아온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의 불편함이 아닙니다. 지식의 단절입니다. 우리가 오픈소스 커뮤니티나 컨퍼런스에서 얻는 가장 큰 가치는 전 세계 개발자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밀도 있는 토론'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이제 런던, 암스테르담, 도쿄가 아닌 미국 내 행사들은 반쪽짜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 유럽, 그리고 우리 한국의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미국행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 역시 풀링포레스트의 조직을 운영하며 이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뛰어난 글로벌 인재를 영입할 때 "미국 오피스 근무"가 큰 혜택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불안 요소가 되었습니다. 인재들은 묻습니다. "제가 거기서 안전하게 계속 일할 수 있나요?" 막막했습니다. 기술은 국경이 없어야 하는데, 정치가 기술의 혈관을 막고 있는 형국이니까요.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질서를 만듭니다. 저는 이 상황을 보며 풀링포레스트의 엔지니어링 문화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재를 억지로 한 곳에 모으는 것'보다 '인재가 있는 곳을 연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구체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첫째, '비동기 커뮤니케이션(Asynchronous Communication)'의 고도화입니다. 물리적으로 만나기 어렵다면, 디지털 공간에서의 협업 밀도를 높여야 합니다. 단순히 Slack이나 Zoom을 쓰는 것을 넘어, GitHub의 PR(Pull Request) 리뷰 과정을 더 상세하게 기록하고, Notion을 통한 문서화 수준을 집요할 정도로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이 아닌 캐나다, 유럽, 아시아에 흩어진 인재들이 시차와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의 코드베이스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둘째, 기술 허브의 다변화입니다. 미국이 문을 닫는 동안 캐나다나 유럽,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은 오히려 비자 장벽을 낮추며 인재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우리 팀 역시 채용의 시야를 실리콘밸리에 한정하지 않고, 서울을 포함한 글로벌 거점으로 넓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저희 팀에 합류한 리드급 개발자는 미국 비자 문제로 이직을 고민하다가, 원격 근무 인프라가 잘 갖춰진 저희를 선택했습니다.
미국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면, 기술의 주도권은 필연적으로 분산될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 있는 우리 개발자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어 가치를 만드느냐'입니다.
독자 여러분, 혹시 해외 취업이나 글로벌 협업을 꿈꾸다 높은 장벽에 좌절하고 계신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기술의 흐름은 물과 같아서, 막힌 곳이 있으면 반드시 다른 길을 터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실력은 비자 스탬프가 아니라, 여러분이 작성한 코드와 해결한 문제로 증명됩니다.
풀링포레스트는 앞으로도 국경 없는 기술 생태계를 지향하며, 전 세계 어디서든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겠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본질인 '기술'과 '사람'에 집중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