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크리스마스, 책상 아래서 시작된 거대한 혁명: 최초의 웹 서버 이야기
1990년 크리스마스, 팀 버너스 리가 NeXT 워크스테이션에서 시작한 최초의 웹 서버 탄생 이야기와 기술의 본질에 대한 풀스택 개발자의 고찰을 담았습니다.
김테크
8년차 개발자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풀스택 개발자 김테크입니다.
개발자로 일하다 보면 가끔 기술의 복잡도에 압도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회사에서 다루고 있는 인프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수십 개의 마이크로서비스(MSA)가 Kubernetes 클러스터 위에서 돌아가고, 서비스 메시가 트래픽을 제어하며, 복잡한 CI/CD 파이프라인이 쉴 새 없이 돌아갑니다.
어제도 트래픽 스파이크에 대응하기 위해 오토스케일링 정책을 튜닝하다가 문득 현타가 왔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온 걸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아주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1990년 12월, 인류 최초의 웹 서버가 탄생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1990년 12월 말은 우리 같은 개발자들에게는 성지순례와 같은 시기입니다. 스위스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근무하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훗날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라 불리게 될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기록에 따르면 12월 20일 혹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에 최초의 웹 서버가 가동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거창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CERN 내부에는 수많은 컴퓨터가 있었지만, 서로 운영체제도 다르고 데이터 형식도 제각각이라 정보를 공유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팀 버너스 리는 이 '데이터의 고립'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기기에서든 데이터를 읽고 연결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유일한 목표였죠.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쉐도우 IT(Shadow IT)'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릅니다. 회사(CERN)의 공식적인 대규모 프로젝트라기보다, 연구원 한 명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NeXT 워크스테이션(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만들었던 바로 그 컴퓨터)에서 뚝딱거려 만든 것이니까요. 그 워크스테이션의 주소가 바로 전설적인 info.cern.ch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8년차 개발자인 저로서도 이 대목에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기술 그 자체에 매몰되어 본질을 잊곤 합니다. "이 기술 스택이 요즘 힙하니까", "남들이 다 쓰니까"라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복잡한 아키텍처를 도입하려 들죠. 하지만 웹의 창시자는 오직 '정보의 접근성'이라는 명확한 문제 해결에만 집중했습니다.
최초의 웹 페이지는 화려한 CSS도, 복잡한 JavaScript 프레임워크도 없었습니다. 그저 웹이 무엇인지, HTML과 브라우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기술 문서가 전부였죠. 하지만 그 단순한 페이지가 가진 힘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후 1993년 모자이크(Mosaic) 브라우저가 등장하고 넷스케이프가 나오면서, 대학 캠퍼스를 넘어 전 세계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닷컴 붐이 일어났고, 오늘날 우리가 풀링포레스트에서 만드는 서비스들의 기반이 닦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그 최초의 웹 페이지 원본 스크린샷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archive.org에 저장된 가장 오래된 기록조차 2000년도의 것이고, 그마저도 "해당 컴퓨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문구만 남아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 정신은 지금 우리가 작성하는 모든 코드 속에 살아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 주니어 개발자분들, 혹은 매일매일 버그와 씨름하며 지친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지금 다루는 기술이 아무리 복잡하고 거대해 보여도, 그 본질은 1990년 크리스마스 무렵의 그 작은 워크스테이션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연결'하고 '공유'하기 위해 개발합니다. 때로는 복잡한 도구들을 내려놓고,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팀 버너스 리가 그랬던 것처럼,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작은 시도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도 터미널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개발자분들, 화이팅입니다. 우리가 띄우는 서버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