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 '낭만'을 잃어버린 개발자들에게: 노이즈 속에서 길을 찾는 법
AI 시대, '한 땀 한 땀 코드를 깎던'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까요? 풀링포레스트 CTO가 말하는 기술적 통찰과 AI 시대의 새로운 생존 전략.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최근 팀의 코드 리뷰를 진행하다가 문득 묘한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며칠 밤을 새워야 했을 기능이 단 몇 시간 만에 구현되어 올라옵니다. 버그도 없고, 성능도 준수합니다. 그런데 코드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예전 우리가 사랑했던 그 '장인 정신'의 흔적은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뼛속까지 '낭만파 엔지니어'였습니다.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음이 사무실을 가득 채울 때 느껴지는 전율, 불필요한 서드파티 라이브러리를 걷어내고 직접 최적화한 유틸리티 함수를 작성했을 때의 쾌감을 사랑했죠. 선언형 코드가 명령형보다 왜 우아한지 논쟁하고, 리액트 컴포넌트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집착하던 그 시절 말입니다. 코딩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 시절의 엄격한 낭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요.
AI가 생성한 코드는 때로는 투박하고, 제가 추구하던 미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코드 품질이 저하되는 것 같아 불안했고,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결과는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우리의 제품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습니다. 지연 시간(Latency)은 SLA 기준을 상회하고, 고객의 피드백은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자본주의 시장은 극도로 빠르고 경쟁적입니다. 여기서 AI는 보디빌딩 선수의 금지 약물과도 같습니다. 경쟁하기 위해선 써야 하고, 쓰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개발자로서의 '개인적 만족'과 비즈니스의 '생존' 사이에서, 우리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AI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큰 위기, 바로 '노이즈(Noise)'와 마주하게 됩니다.
저 역시 한동안 'AI 멀미'를 앓았습니다. Cursor, Claude, Perplexity, 그리고 수많은 AI 에이전트 도구들... 매일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도구들을 탐색하고 온보딩하느라 정작 중요한 문제 해결에는 소홀해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데모가 멋져서, 남들이 다 쓰니까 도입한 도구들은 결국 우리의 워크플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인지적 떠넘기기(Cognitive Offloading)' 현상이었습니다. 20개가 넘는 AI 도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니, 모든 문제를 내가 직접 고민하지 않고 AI에게 반사적으로 넘겨버리게 되더군요. "천천히 생각하기"가 사라지고, 게으름이 생산성으로 포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레버리지(Leverage)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통찰력과 우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낭만'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과거의 낭만이 '한 땀 한 땀 코드를 깎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낭만은 'AI를 지휘하여 상상할 수 없던 규모의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제 저는 풀링포레스트 팀원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새로운 도구가 나왔다고 무작정 도입하지 마십시오. 그 도구가 우리의 비즈니스 지표를 개선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당신의 생각하는 시간을 뺏어가는지 냉철하게 판단하십시오."
우리는 자신만의 '개인용 AI 운영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단순히 도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주의력을 보호하고 증폭시키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이즈를 걷어내고 진짜 신호(Signal)에 집중할 때, AI는 비로소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강'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말고, 파도 위에 올라타는 서퍼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 크고, 더 빠르게 말이죠. 중요한 것은 '어떤 도구'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 도구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느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