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확실성의 시대, 엔지니어링이 '생존'을 말해야 하는 이유
불확실한 시대, 엔지니어링의 목표는 단순한 기능 구현을 넘어 생존과 회복 탄력성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 부채와 AI 시대의 위협에 대응하는 엔지니어의 자세를 다룹니다.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최근 우연히 BBC의 존 심슨이 쓴 기사 하나를 읽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40년 넘게 전 세계 40여 개의 전쟁을 취재해 온 베테랑 저널리스트인데, "2025년만큼 걱정스러운 해는 본 적이 없다"고 단언하더군요. 물리적인 전선뿐만 아니라 해저 케이블 절단, 사이버 공격, 그리고 기존의 국제 질서가 무너지는 하이브리드 위협이 그 이유였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며 섬뜩할 정도로 우리 개발 생태계와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거시적인 위기 상황을 통해 우리가 구축해야 할 엔지니어링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주니어 시절에는 '평화'가 기본값(Default)이라고 믿었습니다. 코드는 내가 짠 대로 돌아갈 것이고, 네트워크는 언제나 안정적일 것이며, 우리가 의존하는 서드파티 라이브러리는 영원히 유지보수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말이죠. 하지만 2018년 무렵, 회사의 핵심 데이터베이스가 예고 없이 셧다운 되었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트래픽은 폭주하는데, 백업 시스템조차 제대로 동기화되지 않았던 그날 밤, 저는 엔지니어로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안정성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지불하고 쟁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기사에서 존 심슨은 유럽이 러시아보다 경제 규모가 10배나 크면서도, 스스로의 방위를 미국에 의존해왔던 안일함을 지적합니다. 이는 우리 개발 조직들이 흔히 겪는 '기술 부채'의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당장의 기능 출시(Feature Release)라는 달콤한 성과에 취해, 레거시 코드 리팩토링이나 테스트 커버리지 확보 같은 '방위비 지출'을 미루곤 합니다. "지금 잘 돌아가는데 굳이?"라는 말은 평화로울 때는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는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특히 지금의 기술 환경은 2025년의 국제 정세만큼이나 복잡합니다. MSA(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로 쪼개진 시스템은 관리 복잡도를 높였고, 클라우드 비용은 예측 불가능하며,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기존의 개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풀링포레스트 팀에서도 최근 Cursor나 Gemini 같은 AI 도구를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AI가 생성한 코드의 보안 취약점'이나 '주니어 개발자의 성장 정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을 항상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이제 엔지니어링의 목표는 단순한 '기능 구현'이 아니라 '생존과 회복 탄력성(Resiliency)'이 되어야 합니다. 유럽이 이제야 자주국방을 고민하듯, 우리도 외부 라이브러리나 특정 클라우드 벤더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기술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팀원들에게 '카오스 엔지니어링'의 마인드셋을 강조합니다. "만약 이 서버가 지금 당장 죽는다면?", "만약 GitHub Copilot이 잘못된 로직을 제안했는데 우리가 검증하지 못한다면?"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는 중요한 배포 전, 의도적으로 장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복구하는 훈련을 합니다. 처음에는 리소스 낭비처럼 보였지만, 지난달 결제 모듈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버그를 배포 10분 만에 롤백하고 정상화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전시 대비 태세' 덕분이었습니다.
기사 속 2025년의 세계는 암울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불확실성을 상수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위에서 무너지지 않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대를 관통하는 엔지니어의 책무일 것입니다.
지금 화면 앞의 막막해하는 주니어 개발자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리고 기술이 급변한다고 해서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불안은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만 공포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작성하는 테스트 코드 한 줄, 동료의 PR(Pull Request)에 남기는 꼼꼼한 리뷰 하나가 결국 우리 시스템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스템의 평화를 지키고 계신 모든 개발자분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