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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4보다 핀 수는 적은데 용량은 더 크다고? SPHBM4 표준 알아보기 - JEDEC에서 준비 중인 SPHBM4 표준에 대해 알아봅니다. HBM4보다 핀 수는 적지만 고속 스위칭과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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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4보다 핀 수는 적은데 용량은 더 크다고? SPHBM4 표준 알아보기

JEDEC에서 준비 중인 SPHBM4 표준에 대해 알아봅니다. HBM4보다 핀 수는 적지만 고속 스위칭과 유기 기판을 통해 비용 절감과 메모리 용량 확장을 노리는 기술적 특징을 분석합니다.

김테크

8년차 개발자

안녕하세요. 8년차 개발자 김테크입니다.

요즘 백엔드나 인프라 쪽, 특히 AI 관련 프로젝트를 다루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바로 GPU 메모리 부족 현상입니다. 거대 언어 모델(LLM)을 돌리거나 학습시키려 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OOM(Out Of Memory) 에러는 정말 꿈에 나올까 무섭죠.

더 큰 용량의 메모리, 더 빠른 대역폭을 모두가 원하고 있는 이 시점에, 국제 반도체 표준 협의 기구인 JEDEC에서 꽤 흥미로운 기술 표준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SPHBM4(Standard Package High Bandwidth Memory)입니다.

기존에 우리가 차세대 메모리로 알고 있던 HBM4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접근 방식이 조금 독특합니다. 오늘은 이 SPHBM4가 기술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고, 왜 우리 같은 엔지니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실무 관점에서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큰 차이점은 핀(Pin)의 개수입니다. 기존 HBM4 표준은 무려 2,048개의 핀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습니다. 엄청난 숫자죠. 핀이 많다는 건 그만큼 데이터가 다니는 고속도로 차선이 많다는 뜻이니 대역폭 확보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JEDEC가 구상 중인 SPHBM4는 이 핀 수를 4분의 1 수준인 512개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로서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핀이 줄어들면 성능도 떨어지는 것 아닐까?"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마치 4차선 도로를 1차선으로 줄이는 것과 같으니까요. 여기서 SPHBM4는 속도(주파수)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JEDEC의 설명에 따르면, 핀 수는 4분의 1로 줄어들지만 작동 주파수를 높이고 4:1 직렬화(Serialization) 기술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차선은 하나로 줄었지만, 차량의 속도를 4배로 높여서 결과적으로 시간당 통과하는 차량의 수(총 처리량)는 HBM4와 동일하게 맞추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복잡하게 고속 스위칭 기술까지 써가며 핀 수를 줄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부분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인 인프라 비용 및 용량 확장성과 연결됩니다.

핵심은 기판(Substrate)에 있습니다. HBM4처럼 2,048개의 핀을 오밀조밀하게 박으려면 핀 간격(Pitch)이 매우 좁아야 합니다. 실리콘 기판을 사용해야만 10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미세 공정이 가능하죠. 하지만 실리콘 인터포저 공정은 비싸고 복잡하기로 유명합니다.

반면, 핀 수를 512개로 줄이면 핀 사이의 간격을 좀 더 넓게 벌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값비싼 실리콘 기판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다루기 쉬운 표준 유기 기판(Organic Substrate)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유기 기판은 2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피치를 가집니다.

이 변화가 가져올 나비효과는 꽤 큽니다. 유기 기판을 사용하면 HBM 모듈을 GPU 코어에서 좀 더 멀리 배치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채널 거리가 길어져도 신호 무결성을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배치 제약이 줄어든다는 건, 하나의 GPU 주변에 더 많은 HBM 스택을 쌓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결국 SPHBM4는 개별 칩의 용량은 HBM4와 같더라도, 시스템 전체로 봤을 때 더 많은 메모리 모듈을 장착할 수 있게 하여 총 메모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노림수입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있습니다. 4:1로 줄어든 핀을 다시 고속으로 제어하려면 베이스 로직 다이(Base Logic Die)를 새로 설계해야 합니다. 다행히 Eliyan과 같은 관련 기업들이 이미 표준 패키징에서 높은 대역폭을 달성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기술적 지원 사격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메모리 3대장인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동의입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공정 비용 절감과 용량 증대라는 이점이 확실해야만 이 새로운 표준을 채택할 테니까요. JEDEC 의장이자 삼성전자 임원인 Mian Quddus가 이 표준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로 보입니다.

정리하자면, SPHBM4는 비싼 실리콘 도로 대신 저렴한 유기 기판 도로를 깔고, 그 위를 더 빠른 속도로 질주하여 비용은 낮추고 용량은 극대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인프라를 다루는 입장에서는, 향후 AI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이 절감되거나 같은 비용으로 훨씬 더 거대한 모델을 메모리에 올릴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아직 개발 단계이고 표준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하드웨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키텍처를 비트는 발상은 우리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트래픽이 몰릴 때 무작정 서버를 늘리는(Scale-out)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로직을 최적화해서 처리량을 늘리는 고민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표준이 실제로 상용화되어 우리의 'OOM 공포'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지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