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프트웨어의 '산업혁명' 앞에서: 우리는 장인인가, 공장 관리자인가
AI 코딩 도구의 부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은 '공예'에서 '산업'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개발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균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AI 코딩 도구들을 보며, 문득 "내가 알던 소프트웨어 개발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서늘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과거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장인 정신'의 영역이었습니다. 한 줄 한 줄 코드를 깎아내고, 비싼 인건비와 시간을 들여 견고한 시스템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었죠. 하지만 최근 Cursor나 Claude 같은 도구들이 보여주는 생산성은 우리가 알던 그 '공예'의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2025년 말, 크리스 로이(Chris Loy)가 언급한 '산업용 소프트웨어의 부상(The rise of industrial software)'이라는 글을 빌려, 우리 개발자들이 직면한 이 거대한 변화의 본질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소프트웨어, 공예품에서 공산품으로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처음에는 AI가 짜준 코드를 보며 "영혼이 없다"고 폄하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소프트웨어 생산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1차 산업혁명이 가내수공업을 공장 시스템으로 대체했듯, AI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산업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숙련된 시니어 개발자의 시간이 가장 큰 병목이자 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AI를 통해 코드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소유하거나 오래 유지보수할 생각이 없는, 말 그대로 '일회용 소프트웨어(disposable software)'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냉철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농업의 산업화가 기아를 해결하는 동시에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라는 건강의 적을 만들어냈듯, 소프트웨어의 산업화 역시 'AI Slop(저품질의 AI 생성물)'을 양산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제본스의 역설과 코드의 늪
경제학에는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원 사용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자원 소비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요가 폭발해 전체 소비량이 늘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지금의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정확히 적용됩니다. 코딩이 쉬워지고 저렴해지니, 우리는 더 적은 코드를 짜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품질'입니다. 풀링포레스트 팀 내부에서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기능 구현을 위해 생성형 AI를 적극 도입했는데, 결과적으로 생성된 코드는 방대했지만 그 안의 로직을 완벽히 이해하고 통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소위 'Vibe coding(기분대로 짜는 코딩)'이라 불리는, 겉보기엔 그럴듯하지만 깊이가 없는 소프트웨어가 범람할 때, 우리는 과연 이것을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디지털 정크푸드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장인과 공장, 그 사이의 균형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요? 전통적인 코딩 방식은 이제 멸종 위기의 수공예품이 되는 걸까요?
저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진짜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션 산업이 스파(SPA) 브랜드와 명품 테일러링으로 양분된 것처럼, 소프트웨어 역시 '빠르고 저렴하게 소비될 영역'과 '장인 정신으로 관리되어야 할 영역'으로 나뉠 것입니다.
풀링포레스트에서 우리는 기술적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이 기준을 명확히 하려 노력합니다.
일회성 프로토타입이나 단순 유틸리티: 과감하게 AI를 활용해 '산업적'으로 생산합니다. 여기서는 속도와 비용 절감이 품질보다 우선합니다.
코어 비즈니스 로직과 레거시 시스템: 철저하게 인간 엔지니어의 통제 하에 둡니다. 이곳은 여전히 '유기농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코드 한 줄의 의미를 씹어 삼키고, 아키텍처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장인 정신이 필수적입니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산업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입니다. 농업 혁명이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했듯, 소프트웨어의 산업화도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풍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비만과 당뇨가 찾아왔듯이, 무분별한 'AI Slop'의 과잉 생산은 기술 부채라는 이름의 질병을 우리 시스템에 안겨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코드를 짜고 계신가요? 공장에서 찍어낸 통조림 같은 코드를 생산하고 있나요, 아니면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재료를 손질한 요리 같은 코드를 만들고 있나요?
앞으로의 개발자는 단순히 코드를 '작성(Writing)'하는 사람이 아니라, AI라는 거대한 공장을 '감독(Supervising)'하고, 산출된 결과물이 우리 제품의 철학에 맞는지 '검증(Verifying)'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변화는 두렵지만, 그 이면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휩쓸리지 않고 파도를 탈 수 있습니다. 오늘도 모니터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동료 개발자분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