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잉카의 매듭에서 차세대 컴퓨팅의 실마리를 찾다
잉카 제국의 기록 방식인 퀴푸와 현대 양자 컴퓨팅의 연결고리를 통해 데이터 구조와 인간 직관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기술의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제 나온 LLM 모델이 오늘은 구형이 되고, 지난달에 도입한 프레임워크가 다음 달엔 레거시 취급을 받기도 하죠. 저 또한 기술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다 보니, 늘 '최신'과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느라 숨이 찰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접한 수학 칼럼 하나가 제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수백 년 전 잉카 제국의 기록 방식이 최첨단 양자 컴퓨팅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기하학적 직관이 기술 발전의 근간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잠시 모니터 앞의 코드를 떠나, 이 거대한 기술의 흐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데이터를 저장한다고 하면 으레 SQL 테이블이나 NoSQL의 JSON 도큐먼트부터 떠올립니다. 0과 1,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세상만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프랭크 윌첵(Frank Wilczek) 교수의 칼럼은 이런 제 고정관념을 흔들었습니다. 잉카인들은 '퀴푸(Quipu)'라는 매듭 묶음을 통해 정보를 기록했습니다. 줄의 위치, 매듭의 종류, 묶인 방식 자체가 곧 데이터였습니다. 놀라운 건 이 방식이 현대 물리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양자 컴퓨팅, 그중에서도 '애니온(Anyon)' 입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모델과 위상학(Topology)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양자 컴퓨팅에서 입자들의 시간 흐름에 따른 경로인 '세계선(world-lines)'이 꼬이며 만들어내는 브레이드(Braid) 구조는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됩니다. 잉카인들이 줄을 꼬아 숫자를 기록했듯, 현대 과학은 입자의 궤적을 꼬아 양자 정보를 기록하려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흔히 '최신 기술'이라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구조와 위상'이라는 아주 본질적인 원리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이 지점에서 저는 우리 개발팀이 겪었던 시행착오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저희는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을 처리하기 위해 데이터를 무작정 잘게 쪼개고, 최신 기술 스택을 도입하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점점 비대해졌고, 정합성은 깨지기 일쑤였습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구조'에 있었습니다. 데이터가 흐르는 길(Topology)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은 채, 그저 저장 매체만 바꿨던 것이죠. 퀴푸가 보여주는 안정적인 구조의 과학은, 복잡한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의 '관계'와 '맥락'을 어떻게 견고하게 묶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사는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로 넘어갑니다. 바로 인간 고유의 '기하학적 직관'입니다. 스타니슬라스 드앤(Stanislas Dehaene)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유목민이나 어린아이들조차 기하학적 규칙성을 본능적으로 인지한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개코원숭이는 훈련을 받아도 이러한 기하학적 이상(oddball)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현재 우리가 개발 중인 AI 에이전트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AI에게 수많은 이미지를 학습시키지만, 과연 AI가 인간처럼 '정사각형'이라는 개념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픽셀의 패턴으로만 기억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한 '직각'과 '평행'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인간 지성을 규정하는 매우 특별한 특이점(Singularity)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발자로서 우리는 종종 사용자가 우리 시스템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사용자는 논리보다 '직관'으로 시스템을 대합니다. 화면의 레이아웃, 버튼의 배치, 정보의 구조에서 느껴지는 기하학적 안정감이 깨질 때, 사용자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는 단순히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인지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프로덕트가 인간의 이러한 본능적인 감각을 거스르고 있지는 않은지 늘 경계해야 합니다.
과거의 유산인 퀴푸에서 양자 컴퓨팅의 미래를 보고, 인간의 뇌 구조에서 AI의 지향점을 찾는 과정은 꽤나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기술은 단순히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먼 과거의 지혜가 가장 미래지향적인 해답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이 작성하고 있는 코드 한 줄, 설계하고 있는 아키텍처 하나가 어떤 '구조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복잡한 라이브러리 사용법보다, 데이터가 얽히고설키는 위상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엔지니어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열쇠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풀링포레스트 팀원들과 함께, 본질을 잃지 않는 단단한 매듭 같은 서비스를 만들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