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개의 북쪽'이 사라진다는 소식과 정렬(Alignment)에 대한 단상
영국의 '세 개의 북쪽' 정렬 현상 종료 소식을 통해, 엔지니어링 조직에서의 비즈니스 목표와 기술적 현실 사이의 '정렬(Alignment)'과 '편차'에 대한 단상을 공유합니다.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최근 흥미로운 지질학 기사를 하나 접했습니다. 영국에서 벌어지던 아주 희귀한 현상인 'Three Norths(세 개의 북쪽)'의 정렬이 이제 곧 끝난다는 소식입니다. 지도상의 북쪽인 '진북(True North)', 나침반이 가리키는 '자북(Magnetic North)', 그리고 지도 투영법상의 '도북(Grid North)'이 정확히 일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2022년 영국 남부에서 시작된 이 정렬 점은 지난 3년간 잉글랜드를 가로질러 북상하다가, 2025년 12월 13일을 기점으로 바다로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이 완벽한 일치가 다시 일어나려면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이 기사를 읽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정렬(Alignment)'이라는 단어는 우리 엔지니어링 조직에서도 지겨울 만큼 자주 쓰이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 목표와 기술 스택의 정렬, 기획 의도와 개발 구현의 정렬, 그리고 팀원 간의 마인드셋 정렬까지. 우리는 늘 완벽한 정렬을 꿈꿉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CTO로서 부임 초기에는 이 '완벽한 정렬'에 집착했습니다. 모든 개발자가 동일한 컨벤션을 따르고, 모든 마이크로서비스(MSA)가 깔끔하게 격리되며, 레거시 코드 없이 신기술이 비즈니스 로직과 딱 맞아떨어지는 유토피아를 그렸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비즈니스 요구사항은 시시각각 변하고, 우리가 도입한 최신 기술은 6개월만 지나면 구형이 되더군요.
과거에 저는 팀원들에게 "왜 우리가 합의한 방향과 다르게 가느냐"며 다그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 즉 시장과 기술 환경이라는 '자기장' 자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자북(Magnetic North)이 매일 조금씩 이동하듯,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 그 변화의 폭은 더욱 극적입니다. 어제까지 정답이라고 믿었던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아키처가 오늘은 Claude나 Gemini의 긴 컨텍스트 윈도우 덕분에 불필요해지기도 합니다. Cursor 같은 AI 코딩 도구가 보편화되면서 주니어 개발자의 성장 커브와 역할 정의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3년 전 세운 '기술 로드맵(Grid North)'을 고집하며 현재의 변화(Magnetic North)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엉뚱한 곳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영국 지질조사국(BGS)의 과학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렬이 끝난다고 해도 항해사나 조종사에게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편차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 문장이 제게는 큰 위로이자 해답처럼 들렸습니다. 리더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정렬 상태'를 강제로 유지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비즈니스 목표(True North)와 기술적 현실(Magnetic North) 사이에 어느 정도의 편차가 있는지'를 정확히 계측하고, 그 차이를 보정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더군요.
풀링포레스트에서 우리는 이제 '영원한 정렬'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유연한 보정'을 택했습니다. 예전에는 거대한 모놀리식 설계를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다면, 지금은 각 도메인이 상황에 맞춰 빠르게 방향을 틀 수 있도록 느슨한 결합을 지향합니다. 누군가 새로운 AI 툴을 도입해 실험하고 싶다면, 전체 정렬을 깰까 봐 두려워하기보다 그 시도가 가져올 '편차'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지 계산해 보고 빠르게 실행에 옮깁니다.
개발자 여러분, 혹시 지금 속한 조직이나 프로젝트가 혼란스럽다고 느껴지시나요? 기획팀의 요구와 개발팀의 현실이 맞지 않아 답답하신가요?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세 개의 북쪽'이 일치하는 순간은 역사적으로도 며칠 되지 않는 기적 같은 순간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 정렬이 깨져 있는 상태가 기본값(Default)입니다. 중요한 건 정렬이 깨졌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들린 나침반이 현재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그리고 지도의 북쪽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인지하고 끊임없이 코드를 수정(Refactoring)해 나가는 태도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만 놓치지 마세요. 그 '편차'를 즐기는 순간, 개발은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라 흥미로운 항해가 될 것입니다. 오늘도 흔들리는 나침반을 들고 코드를 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