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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노트] 비자·마스터카드 없는 세상, EU가 그리는 디지털 유로의 미래 - 유럽중앙은행이 비자와 마스터카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추진 중인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가 핀테크 생태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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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노트] 비자·마스터카드 없는 세상, EU가 그리는 디지털 유로의 미래

유럽중앙은행이 비자와 마스터카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추진 중인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가 핀테크 생태계와 결제 UX에 미칠 파급력과 대응 전략을 분석합니다.

김형철

CEO / PM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EO 김형철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경계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바로 '익숙함'에 속아 거대한 파도를 놓칠 때입니다. 우리는 매일 무의식적으로 카드를 긁고, 삼성페이나 애플페이로 결제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와 데이터의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여서, 감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처럼 느껴지곤 하죠.

그런데 최근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심상치 않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의 결제 공룡들(Visa, Mastercard)과 빅테크(Apple, Google)의 의존도를 끊어내기 위해 칼을 빼 들었습니다. 바로 '디지털 유로(Digital Euro)' 프로젝트입니다.

오늘은 이 거대한 흐름이 비즈니스와 핀테크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우리 같은 프로덕트 메이커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결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유럽의 불안감

솔직히 말해,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비자나 마스터카드에 수수료를 낸다는 사실을 깊게 고민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이것이 뼈아픈 문제입니다.

유럽 내 결제 데이터와 수수료 수익의 상당 부분이 대서양 건너 미국 기업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습니다. ECB는 이를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닌, '데이터 주권'과 '금융 안보'의 위기로 해석했습니다. 만약 국제 정세가 급변하여 미국 기업들이 유럽 내 서비스를 중단한다면? 유럽의 상거래는 순식간에 마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죠.

이 불안감이 바로 디지털 유로 탄생의 강력한 트리거(Trigger)가 되었습니다.

2. 디지털 유로, 무엇이 다른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디지털 유로는 2029년경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열풍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투자 수단'이 아니라 '현금의 디지털 버전'에 가깝습니다.

핵심적인 차별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No-Fee (수수료 제로 지향): 기본적으로 개인 간 송금이나 결제에서 중개 수수료를 없애거나 극도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기존 카드사 비즈니스 모델(BM)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 오프라인 결제 지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결제가 가능하도록 설계 중입니다. 이는 현금의 '완결성'을 디지털로 구현하려는 시도입니다.

  • 프라이버시 강화: 상업적 목적의 데이터 추적을 제한합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결제 데이터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3.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변화와 기회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유럽만의 이야기'로 끝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는 글로벌 결제 표준의 파편화(Fragmentation)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① 결제 UX의 재정의
지금까지 핀테크 앱의 경쟁력은 "얼마나 간편하게 카드를 등록하고 결제하느냐"였습니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디지털 화폐(CBDC)가 도입되면, '지갑(Wallet)'의 개념이 바뀝니다. 은행 계좌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디지털 현금 지갑'을 우리 서비스에 어떻게 심리스(Seamless)하게 녹여낼지 고민해야 합니다.

② 비즈니스 모델의 위기 혹은 전환
결제 수수료(MDR)에 의존하던 핀테크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수수료가 0원에 수렴하는 공공 결제망이 생긴다면, PG사나 VAN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제는 '결제 대행'이 아니라, 결제 전후의 맥락을 연결하는 부가가치 서비스(VAS)로 피벗(Pivot)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③ 레거시 시스템과의 통합 이슈
개발자 관점에서는 끔찍한 혼종이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ISO 8583 메시지 규격과 새로운 디지털 화폐 프로토콜을 동시에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올 테니까요. 당장 우리 팀도 글로벌 서비스를 기획할 때, 결제 모듈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키텍처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4. 마치며: 변화는 불편하지만 필연적입니다

2029년은 먼 미래 같지만, 금융 인프라가 바뀌는 속도를 고려하면 바로 내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애플페이가 한국에 들어올 때도 수많은 논란과 기술적 장벽이 있었지만, 결국 사용자는 편한 길을 택했습니다.

디지털 유로는 단순한 화폐 개혁이 아닙니다. "플랫폼 종속에서 벗어나려는 국가의 시도"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CBDC 도입 속도를 높일 것입니다.

우리 개발자와 PM들은 지금 당장 코드를 짤 필요는 없지만, '결제 수수료가 0이 되는 세상'에서의 생존 전략을 시뮬레이션해봐야 합니다. 데이터가 돈이 되고, 송금 자체가 무료 유틸리티가 되는 세상. 그 위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팔 수 있을까요?

오늘도 변화의 파도 앞에서 서핑보드를 다듬고 계신 모든 메이커 분들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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