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터로 본 유튜브의 위기: 피드 33%를 점령한 'AI Slop'과 우리의 생존 전략
유튜브 피드의 33%를 점령한 저품질 AI 생성 콘텐츠 'AI Slop'의 실태를 분석하고, 콘텐츠와 프로덕트가 나아가야 할 생존 전략을 제안합니다.
김형철
CEO / PM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EO이자 PM을 맡고 있는 김형철입니다.
최근 유튜브 쇼츠(Shorts)를 넘기다 보면 기묘한 위화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분명 화려하고 자극적인데, 알맹이는 없고 어딘가 기괴하게 뒤틀린 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군요. 처음에는 단순히 알고리즘이 튀었나 싶었는데, 최근 접한 데이터를 보고 이것이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적 현상임을 깨닫고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콘텐츠가 이 거대한 '쓰레기(Slop)'의 파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PM으로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든 리포트를 공유하려 합니다.
AI Slop, 혹은 디지털 공해의 습격
최근 비디오 편집 플랫폼 Kapwing에서 발표한 리포트는 충격적입니다. 연구진이 새 계정을 생성해 유튜브 피드를 분석한 결과, 전체 피드의 약 21%에서 33%가 이른바 'AI Slop'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Slop이란 '오물'이나 '꿀꿀이죽'을 뜻하는 단어인데,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이용해 최소한의 노력으로 대량 생산된 저품질 콘텐츠를 말합니다. 이들은 명확한 서사나 논리 대신, 시청자의 뇌를 마비시키는 듯한 자극적인 이미지와 사운드(Brainrot)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PM의 관점에서 이 현상을 분석하면, 이것은 철저하게 '비용 효율성'과 '플랫폼 알고리즘'의 틈새를 파고든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과거에는 콘텐츠 제작에 기획, 촬영, 편집이라는 물리적 리소스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프롬프트 몇 줄과 자동화 스크립트만 있으면 하루에도 수백 개의 영상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공급 비용이 0에 수렴하니, 퀄리티를 포기하고 물량 공세(Volume Play)로 트래픽을 쓸어 담는 전략이 유효해진 겁니다.
한국, AI Slop의 격전지
놀랍게도 이 리포트에서 한국은 주요 플레이어로 언급됩니다. 스페인이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한국은 압도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 트렌딩 AI Slop 채널들의 누적 조회수는 무려 84.5억 회에 달합니다.
특히 'Three Minutes Wisdom'이라는 채널 사례는 흥미로운면서도 씁쓸합니다. 동물이 등장하는 포토리얼리스틱한 AI 영상을 대량으로 올리며, 쿠팡 파트너스 같은 제휴 마케팅 링크를 통해 수익화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추정 연간 광고 수익만 수십억 원(약 4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할 수준이 아닙니다.
플랫폼의 딜레마와 PM의 고민
이 현상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기업에 심각한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단기적 지표: AI Slop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Time on Site)을 늘리고 광고 인벤토리를 창출합니다.
장기적 가치: 사용자 경험(UX)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광고주들에게 브랜드 안전성(Brand Safety) 문제를 야기합니다. 누가 자신의 브랜드 광고가 기괴한 AI 영상 옆에 붙길 원할까요?
풀링포레스트에서 프로덕트를 총괄하는 제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고, 개발자들은 코드 한 줄, UX 디자이너들은 픽셀 하나를 다듬느라 밤을 지새웁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접하는 인터넷 환경이 점차 이런 저질 콘텐츠로 뒤덮인다면, 우리가 만든 정성스런 결과물은 소음(Noise) 속에 묻혀버릴 위험이 큽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이 거대한 'Slop'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단순히 AI를 배척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똑똑하게 활용하되,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AI를 '대체재'가 아닌 '증폭재'로 사용하기
Slop 제작자들은 AI를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여 비용을 0으로 만드는 데 씁니다. 반면, 우리는 AI를 우리의 의도와 가설을 검증하고 퀄리티를 '증폭'하는 도구로 써야 합니다. Cursor나 Claude 같은 도구로 개발 생산성을 높이되, 최종 아웃풋의 품질(QA)과 방향성은 철저히 인간(Human-in-the-loop)이 통제해야 합니다.
밀도 높은 진정성(Authenticity) 확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맥락'과 '경험'입니다. 뻔한 정보 나열식 콘텐츠는 이제 경쟁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겪은 실패, 구체적인 데이터,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인사이트처럼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만이 AI Slop과의 차별점을 만들어냅니다.
큐레이션과 신뢰의 가치 상승
정보의 양이 폭발할수록, 신뢰할 수 있는 필터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오픈된 알고리즘 피드가 오염될수록, 검증된 전문가나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큐레이션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입니다. 우리 제품이 사용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가끔은 현기증이 납니다. 하지만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그 도구를 쥐고 있는 사람의 '철학'이 중요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풀링포레스트 팀은 오늘도 AI가 쏟아내는 소음 속에서, 진짜 신호(Signal)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프로덕트는 이 파도 속에서 안녕하신가요?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임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