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과학에서 발견한 ‘신호 처리’의 비밀, 그리고 개발 조직의 아키텍처
뇌과학에서 발견한 신호 처리의 비밀을 통해 개발 조직의 효율성과 시스템 아키텍처를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합니다. 동기식에서 비동기식으로의 전환, 그리고 I/O 프로토콜의 차이를 존중하는 법.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개발자로서 시스템을 설계하다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입력(Input)'을 어떻게 처리해서 '출력(Output)'으로 내보내느냐로 귀결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최근 예일 의과대학(Yale School of Medicine) 연구팀이 발표한 자폐 스펙트럼(Autism Spectrum)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접했는데, 이 내용이 묘하게도 우리가 고민하는 분산 시스템의 신호 처리 방식, 그리고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문제와 맞닿아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오늘은 뇌과학 이야기를 빌려, 개발 조직의 다양성과 시스템 효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연구의 핵심은 꽤 구체적입니다. 연구진은 자폐 성향을 가진 사람의 뇌와 신경전형적(Neurotypical)인 사람의 뇌 사이에 분자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뇌에서 가장 흔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Glutamate)' 수용체의 밀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외부 자극이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신 장치'의 개수나 감도가 하드웨어 레벨에서 다르다는 뜻이죠.
이 기사를 읽으며 문득, 우리가 매일 씨름하는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MSA)가 떠올랐습니다.
과거 풀링포레스트 초기 시절, 우리는 모든 개발자가 모든 이슈를 실시간으로 인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슬랙(Slack) 알림은 24시간 울려댔고, 지라(Jira) 티켓 생성 알림은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당시 저는 이것이 '투명한 정보 공유'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어떤 개발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 신호를 놓쳤고, 어떤 개발자는 쏟아지는 인터럽트(Interrupt) 때문에 딥 워크(Deep Work)에 진입하지 못해 번아웃을 호소했습니다.
시스템으로 치면, 트래픽을 처리하는 워커(Worker) 노드의 스펙과 처리 로직이 제각각인데, 로드 밸런서가 무지성으로 요청을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사람의 뇌는 저마다 '신호 처리 아키텍처'가 다릅니다. 누군가는 적은 수의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 과도한 자극(흥분성 신호)이 들어오면 시스템이 셧다운(Shutdown) 되거나 방어 기제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 누군가는 많은 신호를 동시에 처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기도 하죠. 이것은 '틀림'이나 '결함'의 문제가 아니라, '처리 방식의 차이'입니다.
저는 이 깨달음을 얻은 후, 조직 운영 방식을 '동기식(Synchronous)'에서 '비동기식(Asynchronous)'으로 전면 개편했습니다.
첫째, 모든 알림의 'Default' 값을 껐습니다. PagerDuty 같은 장애 대응 도구는 정말 긴급한 상황(Critical)에만 울리도록 임계값을 조정했습니다. 마치 뇌가 불필요한 감각 정보를 필터링하듯, 노이즈를 줄이고 신호 대 잡음비(SNR)를 높이는 작업이었습니다.
둘째, 개발자마다 다른 '입력 인터페이스'를 존중했습니다. 어떤 팀원은 구두 회의보다 잘 정리된 노션(Notion) 문서를 선호했고, 어떤 팀원은 텍스트보다 화이트보드 앞에서의 시각적 토론을 선호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단순히 '취향'이라 부르지 않고 'I/O 프로토콜'의 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리더로서 제가 할 일은 그들 사이의 '어댑터(Adapter)'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지, "왜 내 방식대로 못 알아듣냐"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셋째, 시스템 설계 철학에도 이를 적용했습니다. 우리는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빙하는 과정에서, 단일 거대 모델이 모든 것을 처리하게 하기보다, 특화된 작은 모델들이 서로 느슨하게 결합(Loose Coupling)하여 협업하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각 컴포넌트가 감당할 수 있는 부하(Load)와 처리 속도가 다름을 인정하고, 카프카(Kafka) 같은 메시지 큐를 통해 백프레셔(Backpressure)를 조절하는 것이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자들은 이제 막 뇌의 분자적 차이를 발견했지만, 우리 엔지니어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스펙을 가진 서버들이 모여 클러스터를 이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서버의 성능을 똑같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서버들이 조화롭게 통신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임을 말이죠.
동료가 여러분의 메시지에 즉답하지 못하거나, 회의 시간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의 태도를 탓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저 사람의 수용체(Receptor)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내가 너무 많은 트래픽을 한 번에 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다른 하드웨어를 가진 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료들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때, 비로소 우리 조직은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처럼 건강하게 작동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동료에게 보내는 패킷(Packet)의 크기와 빈도를 한번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