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신뢰하는 연결의 배신: 블루투스 헤드폰 취약점 사태를 바라보며
소니, 마샬 등 유명 브랜드 헤드폰에서 발견된 블루투스 취약점 사태를 통해 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보안 의식과 제로 트러스트의 중요성에 대해 고찰합니다.
송찬영
CTO

안녕하세요. 풀링포레스트 CTO 송찬영입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세상과 단절된 채 모니터 속으로 빠져드는 몰입의 순간을 사랑할 겁니다. 저 역시 사무실에서 코드를 리뷰하거나 복잡한 아키텍처를 구상할 때면 습관적으로 헤드폰을 집어 듭니다. 그런데 최근 독일에서 열린 해킹 컨퍼런스 CCC(Chaos Communication Congress)의 39c3 세션 발표 내용을 접하고 나서는, 제 머리 위에 얹힌 이 기기가 조금은 낯설고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단순한 보안 뉴스 전달을 넘어, 이번 블루투스 취약점 사태가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시사하는 바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에 공개된 이슈의 핵심은 소니(Sony), 마샬(Marshall), 자브라(Jabra)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신뢰하는 브랜드의 헤드폰들이 대거 포함된 치명적인 취약점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들 기기에 공통으로 탑재된 Airoha사의 블루투스 칩셋과 SDK였습니다. 연구진은 CVE-2025-20700을 포함한 세 가지 취약점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단순한 도청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이 충격적입니다.
우리가 흔히 블루투스 해킹을 상상할 때는 "내가 듣는 음악을 공격자가 엿듣는 것" 정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번 취약점은 차원이 다릅니다. 공격자는 'RACE'라고 불리는 제조사의 커스텀 프로토콜을 악용해 기기의 플래시 메모리와 RAM에 직접 접근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펌웨어를 공격자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기기의 통제권이 완전히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죠.
솔직히 말해, 여기까지는 하드웨어 임베디드 개발자가 아니면 "남의 일"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등골이 서늘했던 지점은 바로 '측면 이동(Lateral Movement)'의 가능성이었습니다.
공격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먼저 보안이 허술한 헤드폰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헤드폰 내부에 저장된 스마트폰과의 페어링 정보, 즉 '블루투스 링크 키(Link Key)'를 탈취합니다. 이 키를 손에 넣은 공격자는 이제 헤드폰인 척 위장하여, 여러분의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폰에 접속할 수 있게 됩니다. 스마트폰은 이미 해당 기기를 '신뢰하는 기기'로 인식하고 있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연결을 허용합니다. 가장 견고하다고 믿었던 스마트폰 보안의 성벽이, 가장 사소하게 생각했던 주변기기라는 뒷문을 통해 뚫리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도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핵심 코어 시스템의 보안에는 엄청난 리소스를 쏟아붓지만, 정작 그 시스템과 연결된 서드파티 라이브러리나 플러그인의 보안 수준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풀링포레스트 팀원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시스템의 전체 보안 수준은 가장 강력한 부분이 아니라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번 사태는 그 약한 고리가 바로 우리 귀에 꽂혀 있는 이어버드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번 이슈는 하드웨어 공급망(Supply Chain)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Airoha라는 칩셋 제조사가 제공한 레퍼런스 디자인과 SDK를 완제품 제조사들이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취약점 또한 유전되듯 전파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로 치면 널리 쓰이는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에 백도어가 심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하드웨어의 경우 소프트웨어처럼 즉각적인 배포나 패치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제조사가 펌웨어 업데이트를 내놓지 않거나, 사용자가 업데이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보안 구멍은 영원히 열려 있게 됩니다.
기술 리더로서 이 뉴스를 보며 복잡한 심경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해 블루투스 같은 연결 기술을 적극 활용하지만, 그 연결이 오히려 사용자를 위협하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합니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사용하는 블루투스 기기의 펌웨어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개발자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가 신뢰하는 '외부 요소'들이 과연 안전한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는 이제 네트워크 아키텍처 용어가 아니라, 모든 기술적 연결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본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그에 따른 위협도 진화합니다. 하지만 그 위협의 원리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단단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늘 퇴근길, 여러분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여전히 안전하기를, 그리고 여러분이 작성한 코드가 누군가에게 안전한 연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